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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xual

8번 결혼의 사랑쟁이, 그리고 보석 수집광 엘리자베스 테일러

by asakhan 2024. 3. 2.

할리우드의 아름다운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논란의 중심에 선 결혼, 알코올과 약물 중독 문제, 그리고 그녀의 열정적인 보석 수집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그녀의 화려한 삶을 상상해 봅니다. 

 

 

에디피셔와의 결혼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에디 피셔의 결혼은 1950년대와 1960년대의 가장 논란이 되었던 연예계 이슈 중 하나였습니다. 그들의 관계는 세기의 스캔들로 불리며, 그 시대의 사랑과 배신에 대한 대중의 흥미를 끌었습니다.

에디 피셔는 당시 데비 레이놀즈와 결혼한 상태였으며, 두 사람은 할리우드의 '황금 커플'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피셔는 아름다운 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 빠져들었고, 그녀 역시 그의 매력에 이끌렸습니다. 

테일러와 피셔의 관계는 그들의 친구이자 테일러의 남편이었던 프로듀서 마이크 토드의 비행기 사고 이후 본격화되었습니다. 피셔는 토드의 사망 이후로 테일러를 위로하기 위해 그녀 곁을 떠나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서로에게 휴혹되었습니다.

피셔는 결국 레이놀즈와 이혼하고 테일러와 결혼하게 되었지만, 이로 인해 그의 이미지는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그는 '가정 파괴자'로 몰렸고, 그의 음악 경력 역시 타격을 입었습니다. 레이놀즈는 대중 앞에서 피셔에게 배신당한 피해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테일러와 피셔의 결혼은 단지 5년 만에 끝이 났습니다. 테일러는 '클레오파트라' 촬영 중에 리처드 버튼을 만나 사랑에 빠져, 피셔와의 이혼을 선택했습니다. 이로 인해 테일러는 다시 한번 큰 논란의 중심에 섰지만, 그녀의 인기는 여전했습니다.

 

 

리처드 버튼과의 스케치북 로맨스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의 로맨스는 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스캔들 중 하나입니다. 그들의 관계는 '클레오파트라'의 촬영장에서 시작되어, 두 번의 결혼과 이혼, 그리고 변화무쌍하고 격정적인 사랑으로 이어졌습니다.

1962년,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은 '클레오파트라' 촬영 중에 만났습니다. 당시 테일러는 에디 피셔와 결혼한 상태였고, 버튼도 그의 아내 시밀 머티스와 결혼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즉시 서로에게 끌렸고, 이는 세계적인 스캔들로 이어졌습니다. 그들의 관계는 세간의 이목을 끌었고, 이는 '클레오파트라'의 흥행에도 크게 기여했습니다.

테일러와 버튼은 각각의 배우자와 이혼한 후 1964년에 결혼했습니다. 그들의 결혼식은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열렸고, 이는 세계적인 관심사였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분명했지만, 그들의 관계는 항상 몰아치는 논란과 스트레스, 그리고 그들의 거친 성격 때문에 힘들었습니다. 

그들의 결혼은 10년 동안 이어졌으나, 결국은 이혼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혼 후에도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고 고백했고, 1975년에 다시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이 결혼도 오래 가지 못하고, 다음 해에 또 다시 이혼하게 되었습니다. 

테일러와 버튼의 관계는 그들의 전성기를 통해 대중의 이목을 끌었습니다. 그들의 사랑은 깊고 격정적이었지만, 그들의 성격과 환경, 그리고 그들의 인생에서의 다른 요인들로 인해 결국은 끝이 났습니다. 

 


알코올과 약물중독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그녀의 놀라운 영화 경력과 화려한 사랑 이야기뿐만 아니라, 고통스런 알코올과 약물 중독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테일러는 여러 번 공개적으로 알코올과 약물 중독을 인정하였습니다. 그녀는 그녀의 중독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번 치료를 받았으며, 이는 그녀의 건강과 경력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1970년대 초, 그녀는 처방된 약물에 의존하게 되었고, 이로인해 건강을 점점 악화시켰습니다. 그녀의 중독 문제는 그녀의 연기 경력과 개인적인 삶에 모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그녀를 여러 차례 병원에 입원하게 만들었습니다.

테리러는 중독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차례 노력했으며, 이를 위해 여러 치료 프로그램에 참석했습니다. 또한 중독 문제를 공개적으로 인정하며,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경험을 통해 배울 수 있도록 하였고 극복의 의지와 결단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녀는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줄 수 있었습니다.

 

 

많은 결혼과 다채로운 사랑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그녀의 독특한 사랑의 이야기와 많은 결혼으로 유명했습니다. 그녀는 총 8번 결혼했는데, 이는 그녀의 삶과 경력과 개인적인 취향을 대표하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였습니다.

첫 번째 결혼은 1950년 당시 18세였던 테일러가 부자 상속자 콘래드 '닉키' 힐튼 주니어와 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결혼은 단 9개월 만에 끝났습니다. 그녀의 두 번째 결혼은 영국 출신 배우 마이클 와일딩과의 것이었습니다. 이 결혼은 5년 동안 지속되었지만, 그녀가 이혼을 결정한 이유 중 하나는 세 번째 남편이 될 프로듀서 마이크 토드 때문이었습니다. 

테일러와 토드의 결혼은 토드의 사망으로 갑작스럽게 끝났습니다. 그녀는 곧 에디 피셔와 결혼했지만, 이 결혼은 그녀가 리처드 버튼과 사랑에 빠지면서 다시 끝났습니다. 테일러와 버튼의 관계는 그녀의 가장 유명한 로맨스 중 하나였습니다. 그들은 두 번 결혼하고 두 번 이혼했습니다.

그녀의 마지막 결혼은 건설 노동자 래리 포텐스키와의 것이었습니다. 이 결혼은 1996년에 시작되어, 테일러의 사망인 2011년까지 지속되었습니다. 

테일러의 여러 차례의 결혼은 그녀의 삶과 사랑에 대한 복잡한 태도를 보여줍니다. 그녀는 사랑을 해왔지만, 그녀의 강한 성격과 독립적인 정신 때문에 그녀의 결혼은 항상 쉽지 않았습니다. 

 

 

 

보석 수집광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화려한 영화 경력과 여러 차례의 결혼 뿐만 아니라, 보석 수집광으로도 유명했습니다. 그녀의 보석 수집은 그녀의 부와 그녀가 누렸던 생활 방식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테일러의 보석 컬렉션에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값비싼 보석들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녀의 컬렉션에는 크러쉬드 벨벳상자에 담긴 33.19캐럿의 크루거 다이아몬드, 리처드 버튼이 그녀에게 선물한 69.42캐럿의 피어슨 다이아몬드 등이 있습니다. 이 외에도 그녀의 컬렉션에는 에메랄드, 루비, 사파이어, 펄 등 다양한 종류의 보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녀는 보석에 대한 사랑을 공개적으로 많이 표현했습니다. 그녀는 보석들을 '친구'라고 불렀으며, 그들이 행복과 안위를 제공한다고 말했습니다.

테일러의 보석 컬렉션은 2011년 그녀의 사망 후 크리스티의 경매에서 팔렸으며, 이는 역사상 가장 큰 개인 보석 컬렉션 경매로 기록되었습니다. 이 경매는 총 1억 5천 7백만 달러를 벌어들였으며, 이는 그녀의 보석 컬렉션이 얼마나 가치 있고 특별한지를 보여줍니다.

테일러의 보석 수집은 그녀의 삶과 경력, 그리고 그녀의 세련된 취향을 대표하는 중요한 부분이었습니다. 수집한 보석들은 그녀의 아름다움과 우아함, 그리고 그녀의 독특한 개성을 반영하였습니다.